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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이효원 리코더 독주회 (2020. 12. 2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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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이효원 리코더 독주회 (2020. 12. 2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브뤼헨 (황금빛모서리) 2020. 12. 3. 13:44

 

Il Flauto Virtuoso

Program >

A.M. Montanari / Concerto in C Major for Recorder, Strings and Basso Continuo

P. Castrucci / Sonata in d minor for Recorder and Basso Continuo, Op. 1 No. 10

D.N. Sarro / Concerto in d minor for Recorder, Strings and Basso Continuo

N. Fiorenza / Concerto in a minor for Recorder, Strings and Basso Continuo

G. Sammartini / Sonata in G Major for Recorder and Basso Continuo, Op. 13 No. 4

I. Sieber / Sonata in g minor for Recorder and Basso Continuo, No. 8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12월 1일 예술의전당 직원 확진으로 인해 당일 콘서트홀 공연(헨델 메시아)은 취소되었고, 다음날 2일 이 공연 또한 여파가 미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다행히 공연은 예정대로 진행되었고, 최근의 상황에 따라 지그재그식의 객석 배치로 일정 인원만 참석할 수 있었다. 덕분에 개인적으론 좋은 음향을 접할 수 있었던 것 같다. 10열 2번의 자리에서 꽤 괜찮은 소리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코로나에 감사해야 하나... 한편으론 씁쓸했다.

 

이번 연주회는 'Il Flauto Virtuoso'라는 타이틀에서도 보이는 것처럼 이탈리아 바로크 작품들로 꾸며졌다. 하지만, 흔히 이탈리아 하면 떠올리는 비발디 같은 베네치아 악파 작곡가들의 곡은 없었고, 나폴리와 로마 악파 작곡가들의 작품들로만 꾸며진, 비주류 이탈리아 바로크 작품들로 채워졌다. 사실 로마악파는 코렐리라는 거장이 있기에 비주류라 하긴 좀 그렇지만, 워낙 대중들에게 비발디가 강하게 각인되어 있다보니 그렇고, 나폴리는 그야말로 이탈리아 바로크 음악에서는 비주류라 불려도 어색하지 않은 소외된 부류일 것 같다. 최근에야 몇몇 연주자들이 나폴리 음악을 하나 둘 소개하고 있어 그늘에 가려진 작품들이 점차 빛을 보고 있다. 개인적으로 나폴리 바로크는 피오렌자의 음악을 통해 관심 갖기 시작했다. 우연히 들었던 조르지오 마테올리(Giorgio Matteoli)의 피오렌자 리코더 협주곡집. 일부 약간 둔탁한 듯한 표현으로 아쉬운 대목도 있었지만, 그가 전해준 감성은 내면의 뭔가를 강하게 끌어기에 충분했다. 

 

사실 음악에 서열을 매긴다는 것은 무척 어리석은 일이다. 마주한 시대가 어떤 취향을 선호하느냐에 따라 과거의 음악들이 재발견되는 것일텐데, 나폴리는 뛰어난 감성을 자극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류에 속하진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특유의 감성과 맞닿게 되면 오히려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끝도 없이 마구 달려대는(?) 비발디스런 이탈리아 음악들이 때로는 젊은 혈기로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만큼 나폴리 음악은 이탈리아스럽지 않은(?) 감성이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서글픔' 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게 만드는 음악이다. 상당히 내성적인 자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이 나폴리 음악들에 배어 있다. 사실 어제의 연주회는 나폴리 악파의 작품은 사로(혹은 사리)와 피오렌자 둘 뿐이었다. 로마의 몬타나리, 카스트루치, 지버와 영국 작곡가라 해도 무방할 삼마르티니가 있었기에 큰 비중은 아니었음에도 개인적으론 연주회 전체의 흐름이 나폴리스런 느낌으로 와닿았다. 이 부분은 어쩌면 연주자의 성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자아성찰(?)에 가까운 표현력은 작품에 세밀함을 더해 주었던 것 같다.

 

몬타나리의 협주곡과 카스트루치의 소나타는 실제 바이올린곡임에도 불구하고 본래 리코더 작품처럼 와닿았다. 리코더로 바이올린이 아닌 리코더 본연의 목소리를 전달코자 했기에 목가적인 감성이 전달되었던 건 아니었을까. 느린 악장에서의 세미한 비브라토는 작품의 서정성을 분명하게 부각시켰는데, 특히 몬타나리 협주곡에서 고음역의 소프라노 리코더로의 여린 비브라토는 일품이었다. 이번 연주회는 협주곡은 바이올린 두 대와 첼로, 하프시코드(또는 포지티브 오르간), 비올로네 편성으로, 소나타는 첼로와 하프시코드 편성으로 연주했는데, 몬타나리나 카스트루치 뿐만 아니라 이후의 작품들에도 앙상블의 묘미는 시종일관 느껴졌다. 일차적으로 독주자가 전체 흐름을 앙상블에 초점을 맞춘 것처럼 보였고, 앙상블 주자들 또한 절대 과하지 않은 연주를 들려줘서 관객들은 연주자들의 간결한 호흡을 만끽했을 것이다. 초반에 비올로네의 음량이 다소 과하다 싶기도 했지만, 객석 위치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연주회의 타이틀을 보면 뭔가 막 비르투오즘이 느껴지는 무대가 연상되겠지만, 실제 연주는 그렇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이번 연주회 자체는 솔리스트의 카리스마를 돋보이게 할 목적이 아니었던 것 같다. 작품 성격상에도 그렇겠지만, 베네치아를 쏙 빼놓고 흔히 말하는 비르투오즘을 기대할 수 있을까? 연주자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비르투오즘이 비르투오즘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같다. 무엇보다 이번 연주회는 전체 앙상블의 조화가 돋보이는 공연이었다. 사실 비발디 특유의 '빠르고-느리고-빠른' 3악장 구성의 다이내믹한 협주곡 구성과 달리 나폴리의 협주곡들은 콰르텟 같은 느낌을 준다. 스카를랏티의 협주곡도 그렇고, 이번에 연주된 사로나 피오렌자에서도 그렇다. 어떤 면에서는 비발디의 협주곡 스타일이 바로크 이후의 협주곡 성격과는 더 맞을 것 같다. 나폴리의 협주곡은 콰르텟과 협주곡의 교집합 정도에 위치한 느낌이다. 이런 성향을 텔레만은 자신의 콰르텟 작품에도 적용했는데, 그의 작품을 듣다 보면 나폴리 협주곡이 연상될 정도다. 그만큼 독주자와 앙상블간의 긴밀한 대화가 필요한 작품. 과거 리코더 연주자 미하엘 슈나이더의 마스터 클래스에서 콘티누오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던 부분이 이번 연주회에서 분명하게 느껴졌다. 단순한 반주 개념이 아닌 콘티누오, 독주자는 콘티누오의 흐름에 편승하면서 유기적인 조합을 끌어냈다. 마치 정교한 시계의 톱니바퀴들처럼 이들의 연주는 앙상블 그 자체였고, 아름다웠다. 

 

마지막 곡 이그나치오 지버(Ignazio Sieber)의 소나타는 뜻밖의 수확이었다. 이날 처음 접해본 작곡가의 작품이었다. 특히 마지막 악장의 서서히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빠른 속주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서정적인 전반부에 이은 후반부의 강렬한 묘사는 '비르투오즘'을 떠올리게 했는데, 이 빠른 속주가 주로 중,저음 부분에 강조되어 있어 연주자 입장에선 연주가 쉽지 않았겠다 싶다. 호흡과 핑거링, 텅잉, 템포 이 모든 것을 안고 가야 하는 대목에서 얼마만큼의 집중력이 필요했을지.  마지막 음을 쏟아내고 연주자는 잠시 망설이는 듯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불안한 현 시기에서 준비한 연주회의 마지막이 아쉬워서였을까. 그럼에도 무사히 끝냈다는 안도감과 섭섭함이 교차해서였을까. 앙코르곡을 소개하는 연주자의 목소리에서 관객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으리라.

 

앙코르곡은 역시 이탈리아의 작곡가 바르산티의 작품. 그가 스코틀랜드에서 결혼하고, 사랑하는 아내에게 헌정한 작품집에 수록된 곡으로 스코틀랜드 민속음악을 토대로 쓴 곡이라 한다. 원곡은 The Lass of Peatie's mill. 바르산티의 작품은 아니지만, 같은 테마로 과거 팔라디안 앙상블이 'Held by the Ears'에 편곡해서 연주하기도 했던 곡으로 스코틀랜드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서정적인 작품이다. 특히 리코더와 바이올린의 대화가 인상적인.... 여기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앙코르 곡으로 앞선 모든 연주를 뭉클한 마음으로 위로하며 연주회를 끝냈다. 

 

연주자 입장에서 이번 연주회 같은 프로그램으로 기획한다는 건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일 것 같다. 비발디의 협주곡에서처럼 현악주자들이 활을 높이 올리며 끝맺는 종지 부분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도 쉽지 않고, 때문에 연주자는 더욱 철저하게 내면의 깊은 곳을 더듬어야 가능한 연주. 그럼에도 이런 공연을 준비해준 연주자에게 깊은 감사가 절로 나온다. 관객들 또한 연주자의 이런 성찰을 공감하지 않았을까 싶다. 화려하진 않지만, 깊은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작품들. 이런 연주회를 다음에도 또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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