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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셀 : How pleasant ‘tis to Love! [스케르치 무지칼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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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셀 : How pleasant ‘tis to Love! [스케르치 무지칼리]

브뤼헨 (황금빛모서리) 2014. 9. 5. 13:33

 

 

 

헨리퍼셀 : How pleasant ‘tis to Love!

 

스케르치 무지칼리 / 니콜라스 아흐텐 (바리톤, 하프, 버지널 & 음악감독)

라이누트 판 메켈렌 (테너)

Alpha 192

 


 

영국의 작곡가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은 청소년들에게 관현악에 사용되는 오케스트라 악기들을 알기 쉽게 소개하기 위해 쓴 작품으로 학창시절 교과서에 단골메뉴로 소개되곤 한다. 브리튼은 각 악기들의 특색 있는 음색을 소개하기 위해 한 작곡가의 선율을 사용했고, 그 선율은 작품 전반에 다양한 악기들의 음색으로 등장한다. 그 선율은 바로 헨리 퍼셀의 모음곡 ‘압델라자르’에 등장하는 주제다. 브리튼은 그에 앞서 이 대 작곡가를 소개하면서 이런 수식어를 덧붙였다. ‘영국의 위대한 작곡가’

 

‘영국의 오르페우스’라고 불린 헨리 퍼셀(Henry Purcell, 1659-1695)은 이처럼 영국 바로크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오늘날에도 영국의 자부심과도 같은 인물이다. 36세라는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퍼셀은 그의 생애 동안 거의 모든 장르의 엄청난 양의 작품들을 남겼다. 특히, 오페라에 있어 크게 두각을 드러낸 그는 블로우(John Blow)에 이어 영국 오페라의 초기 발판을 마련한 인물이었다. 아쉽게도 당시 영국의 군주나 대중들은 오페라보다는 연극에 더 열광했던 탓에 퍼셀의 오페라는 당대에 큰 빛을 보진 못했다. 오히려 연극과 춤, 노래, 발레 등이 종합적으로 등장하는 장르인 마스크(Masque)가 당시에는 더 큰 호응을 얻었다. 퍼셀은 그가 영향을 받은 프랑스, 이탈리아 오페라와 영국의 마스크를 혼합하여 영국식 오페라를 만들어냈다.

 

오늘날 퍼셀의 대표작이자 바로크 오페라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디도와 에네아스’ 마저도 당대에는 성공을 맛보지 못했다. 이런 당시 분위기는 ‘세미 오페라’라는 장르가 나오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고, 퍼셀 또한 5개의 작품을 위해 곡을 쓰기도 했다. 이 밖에도 퍼셀은 다양한 성악 작품들을 상당수 남겼다. 앤섬이나 서비스 등의 교회음악을 포함, 상당히 많은 가곡을 남겼고, 이 작품들은 앞선 다울랜드나 캠피온 등의 가곡을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특히 그라운드 베이스의 기반 위에 장식된 서정적인 아름다운 선율미는 퍼셀 가곡의 특징이다. 이런 가곡의 형태는 기악에도 영향을 미쳐서 퍼셀은 독주 악기를 위한 그라운드를 다수 남겼고, 당시 영국에서 상당히 인기를 끌었던 리코더 또한 이 장르에 주로 사용되곤 했다.

 

니콜라스 아흐텐이 이끄는 고음악 앙상블 스케르치 무지칼리가 퍼셀의 가곡과 기악곡들을 담은 소품집을 녹음했다. 보통 퍼셀의 가곡들은 소프라노나 카운터 테너들을 통해 불리곤 하지만, 이들은 테너와 바리톤의 음색으로 노래했다. 팔방미인인 니콜라스 아흐텐은 바리톤과 하프, 버지널 등을 직접 연주하면서 테너 라이누트 판 메켈렌과 노래했고, 퍼셀 시대에 사랑받았던 리코더와 비올라 다 감바 등의 악기들은 노래에 맞춰 장식을 곁들이거나 독립적인 기악 작품들에서 주선율을 연주했다. 무엇보다 이 음반이 매력적인 것은 22곡의 작품들을 적절하게 구성하면서 마치 셰익스피어의 연극 한 편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바로크 테너 판 메켈렌의 맑은 미성과 풍부한 연기력은 이 작품집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에 충분히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아흐텐과 듀엣을 부를 때나, 솔로로 노래할 때 모두 자신의 존재감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였다. ‘Still I’m whishing’에서의 슬픔을 자극하는 선율에서도 밝음을 잃지 않는 투명함은 슬픔을 배가시키는 결과마저 창출해낸다.

 

기악, 특히 두 대의 리코더는 전체 흐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특히, 중간 중간 등장하는 소품들은 연극의 막간 음악, 간주곡처럼 흐름이 끊기지 않는 역할을 한다. 퍼셀 시대의 제작가인 킨제커나 데너 등의 모델을 카피한 리코더를 사용하면서 당시 음악의 복원에 더 세심하게 접근한 노력 또한 훌륭하다. 건반악기를 하프시코드가 아닌 버지널을 사용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이 음반은 퍼셀이 활동하던 시기 영국 청중들이 열광했던 연극적인 요소를 적극 활용하면서 당대의 음악을 복원하는데 성공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겠다. 마지막 에필로그처럼 극을 마무리 짓는 ‘An Evening Hymn’의 여운은 상당히 짙다.

 

 

박광준 (goldedge@hanmail.net)

AppZine Classic 2014년 6월 33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