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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일상

리코더의 자아의식 높이기

브뤼헨 (황금빛모서리) 2010. 10. 13. 12:03



이제는 리코더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만한 리코더의 대략적인 역사라고 하자면

"리코더는 과거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시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위대한 악기..."

정도가 아닐까....

오늘날 고음악의 후발주자격인 대한민국에도 고음악의 물결이 휘몰아치면서 각종 시대악기 단체들이 생겨나고, 해마다 고음악 축제도 열리면서 예전보다 고음악에 대한 시각이 바뀐 것이 사실이다. 해외에서 각종 바로크 시대 악기들을 전공한 연주자들도 공부를 마치고 귀국해서 활동을 보여 주면서 대한민국의 고음악 부흥운동(?)에 활기를 더하고 있기도 하다. 여전히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아직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면도 보이고, 뭔가를 이루고자 하면 해외에 지원요청을 해야 하는 부분도 많지만 그래도 하향곡선을 그리는 다른 나라들에 비하면 우리에겐 여전히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것도 사실이다.

일반인들도 예전에는 존재조차 몰랐던 하프시코드를 심심찮게 공연장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고, 수 많은 애호가들도 세련되고 화려하면서 빵빵한 음량을 자랑하던 모던악기에서 작은 음량 뿐만 아니라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오래된 악기들에게 관심을 주기 시작했다. 아마추어 동호회에서도 바로크악기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반드시 바로크악기는 아니더라도 그 스타일을 반영하는 것도 무척이나 고무적인 일로 보인다. 리코더 또한 국내 대학에도 전공이 생기면서 그에 대한 기대감이 상당하다. 리코더 하면 초등학교 아이들이 부는 속칭 '피리' 정도의 개념에서 그래도 이젠 최소한 장난감은 아니라는 의식 정도는 갖춰진 것 같다. 그렇지만, 아직도 리코더가 목관이 있느냐는 등의 질문을 받을 때면 가끔 난감한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본다. 혹시 리코더를 사랑한다는 애호가들이 리코더의 악기로서의 자존감을 스스로 떨어뜨리고 있는 건 아닌지... 리코더를 좋아하면서도 이 악기를 무의식적으로나마 과소평가하고 있는 건 아닐까?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또는 플루트 등과 견주어 볼 때, 리코더는 그 악기들에 비해선 전문성이 떨어지고 마이너 악기라고 생각하면서 그런 악기들을 연주하는 사람들 앞에서 괜히 기죽은 모습을 보이진 않는가? 그러면서도 리코더를 '피리'라고 부르는 사람들 앞에선 얼굴을 잔뜩 찡그리면서 "이건 피리가 아니라 리코더라고!!" 라고 힘주어 말하지 않는가?

리코더인들 스스로가 자신의 악기들에게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리코더는 비록 사람들에게 외면받고, 소외된 악기지만...." 같은 말들은 리코더에 대한 수준을 스스로 낮추는 격이 된다. 왜냐하면 우리들 의식속에서나 그렇지 실제로 리코더는 소외받는 악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리코더가 악기의 왕이라고 떠받들자는게 아니라 최소한 다른 악기와 동등한 시각에서 바라보자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는 리코더의 '연약성'에 의존해서 리코더를 동정하는 일은 이제 그만 끝냈으면 좋겠다. '우리의 리코더'는 이제 충분히 홀로서기를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 큰 자식을 출가시키지 못하고 품에 안고 있는게 우리의 모습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분명히 있다.

2009. 1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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