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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더 이야기 - 5. 리코더 연주가

브뤼헨 (황금빛모서리) 2012. 5. 26. 12:05

 

리코더 이야기 - 5. 리코더 연주가

 

리코더는 바로크시대 이후 역사 속에서 약 200년간 사라졌다가 20세기 중반 고음악 부흥운동을 통해 다시금 세상을 얼굴을 내민 악기다. 이런 연유로 고음악 부흥운동 당시 리코더 연주가들에게 있어서 이 악기와 당대의 음악들을 제대로 복원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대의 연주관습을 찾아 음악을 복원한 선배 연주자들 덕분에 오늘의 리코더 음악이 존재한다. 오늘날 상당히 많은 리코더 연주가들이 있지만, 이번 호에서는 그 중에서 주목해 볼 만한 연주가들을 소개해본다.

 

 

 

1. 데이빗 먼로우 (David Munrow, 1942~1976)  http://www.davidmunrow.org

 

데이빗 먼로우는 고음악 부흥운동의 선구자격에 속하는 인물이다. 그는 리코더뿐만 아니라 중세, 르네상스시대의 관악기에도 뛰어난 실력을 갖춘 연주가였다. 우연한 기회에 크룸호른(Krummhorn)을 접하면서 고악기에 심취하게 된 먼로우는 이후 런던 고음악 콘소트(The Early Music Consort of London)를 결성하면서 본격적으로 고음악 복원에 매진했다. 당시 그와 뜻을 함께 했던 이들 중에는 크리스토퍼 호그우드나 제임스 타일러, 올리버 브룩스 등도 있었다. 데이빗 먼로우를 리코더 연주가로 한정 짓기란 불가능할 정도로 그는 상당히 많은 악기들을 다뤘고, 그가 활동한 영역 또한 방대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안타깝게도 34세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지만, 먼로우는 20세기 고음악 부흥운동에 굵직한 흔적을 남긴 예술가로 기억된다. 오늘날 바로크 이전의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적 기틀은 데이빗 먼로우에 의해서 확립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2. 프란스 브뤼헨 (Frans Brüggen, 1934~ )  www.orchestra18c.com

 

지금은 18세기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더 이상 리코더를 연주하고 있지는 않지만, 누구나 첫 번째로 손에 꼽는 리코더 연주자는 바로 프란스 브뤼헨이 아닐까 싶다. 브뤼헨은 백지상태와도 같았던 리코더 음악들을 20세기에 체계적으로 정립시켜 나갔던 장본인으로 바로크시대 뿐만 아니라 현대음악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현재는 18세기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고음악과 고전, 낭만 레퍼토리를 시대악기로 연주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음반 레이블인 텔덱(Teldec)에서 발매된 그의 리코더 에디션(12장)은 수많은 후배 리코더 연주가들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켰고, 오늘날에도 리코더 연주의 기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발터 판 하우베, 케이스 부커와는 앙상블(Sour Cream) 작업을 통해서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음악들을 복원했고, 이러한 형태는 오늘날 리코더 앙상블의 롤모델이 되기도 했다. 특히, 지금은 고인이 된 호주의 리코더 제작자인 프레드릭 모건(Frederick G. Morgan)과의 교류는 리코더 음악과 악기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3. 위고 레인 (Hugo Reyne, 1961~ )  http://www.simphonie-du-marais.org

 

프랑스의 대표적인 리코더 연주가이자 바로크 오케스트라 지휘자인 위고 레인은 바로크시대, 특히 프랑스 바로크 음악을 설득력 있게 해석한 연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는 1983년부터 윌리엄 크리스티가 이끄는 ‘레 자르 플로리상(Les Arts Florissants)'의 단원으로 1986년까지 활동했고, 이후 1987년에는 자신의 앙상블인 ’라 심포니 뒤 마레(La Simphonie du Marais)'를 창단했다. 이때부터 그는 프랑스 음악, 특히 극음악의 연주에서 활기를 띠었다. 르벨의 ‘율리시즈’, 륄리의 ‘아튀스’ 등 프랑스 작곡가들의 오페라는 그의 지휘 아래 ‘프랑스적인’ 음악으로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연주가 만족스러운 것은 음악에 여유를 불어 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까다롭게 여겨지는 프랑스 음악도 그의 여유로움과 만나다 보면 어렵지 않은 화법으로 관객들에게 전달되고 이해되곤 한다. 기교나 장식적인 부분에 치중하기 보다는 본질에 보다 더 접근하는 그의 연주 스타일에는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한 감성이 배어있다. 상당히 오래된 녹음임에도 지금도 회자되곤 하는 그의 헨델 리코더 소나타(Harmonia Mundi France)는 이런 감성과 감각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대표적인 녹음 중의 하나다. 프란스 브뤼헨이 지휘를 시작하면서 리코더 연주에서는 손을 뗀 것과는 달리 그는 지금도 리코더 연주와 지휘를 겸하고 있고, 2003년부터는 샤보테리 음악 페스티벌(Le Festival de musique à la Chabotterie)의 예술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4. 미하엘 슈나이더 (Micahel Schneider, 1953~ )  http://www.michael-schneider-info.de

 

미하엘 슈나이더는 리코더와 트라베르소 연주가이자 지휘자, 학자이기도 한 음악가다. 학구적인 면모와 따뜻한 인품이 배어있는 그의 연주는 정교하고 예리하면서도 따뜻한 인간미가 풍겨난다. 미하엘 슈나이더는 특히 독일 음악에 강점을 보이는데, 누구보다도 많은 리코더 작품을 남긴 텔레만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그의 여정은 도이치 하르모니아 문디에서 녹음한 그의 첫 레코팅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 이미 CPO 레이블을 통해 세간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텔레만의 상당수의 작품들을 선보였고, 특히 관악 협주곡집(총 8장)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슈나이더는 텔레만 스페셜리스트라 불리기에 충분한 연주가다. 그의 이러한 노력에 막데부르크 시에서는 2000년도에 그에게 텔레만 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의 음악 여정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꼽는다면 단연코 카메라타 쾰른과의 인연일 것이다. 1979년 창단한 카메라타 쾰른은 17~18세기 바로크시대의 실내악을 중심으로 지금까지도 의욕적인 연주활동을 하고 있는 시대악기 단체다. 또한, 슈나이더는 바로크 오케스트라인 라 스타지오네 프랑크푸르트를 지휘하면서 칸타타, 오페라 등의 보다 큰 편성의 작품들도 적극적으로 무대에 올리고 있다. 그의 노력 덕분에 다작 작곡가로도 유명한 텔레만의 숨겨진 적지 않은 작품들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5. 도로테 오베를링어 (Dorothee Oberlinger, 1969~ )  http://www.dorotheeoberlinger.de

 

독일의 여류 리코더 연주가 도로테 오베를링어는 오늘날 가장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리코더 연주가 중 한 명이다. 솔리스트로서 갖춰야 할 자신감과 확신에 찬 연주는 오늘날 수많은 관객들의 호응을 얻어내고 있고, 완벽한 테크닉과 어떤 상황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는 차분함은 관객들에게 연주가로서의 신뢰를 더해주고 있다. 이런 이유 탓인지 그녀에겐 ‘얼음공주’라는 별칭마저 있지만, 단순히 테크니션으로만 분류하기엔 오베를링어의 연주는 정말 탁월하다. 바로크음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다이내믹의 대비는 그녀의 연주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그녀의 머릿속에 자리 잡은 음악적 상상력은 다양한 장식음과 아티큘레이션으로 다채로운 색감의 음악을 재현해 낸다. 아마도 이린 이유들로 인해 애호가들은 오베를링어의 연주를 통해 음악적 재미를 느끼고, 발매되는 레코딩마다 관심을 기울이는 것 같다. 2003년 오베를링어는 자신의 앙상블인 앙상블 1700을 결성하고, 이후 탄탄한 팀워크로 더 생명력 넘치는 음악들을 쏟아내고 있다. 당대의 자료들을 통해 그녀가 새롭게 시도한 대목들도 적지 않은데, 그 중에서도 비발디 리코더 협주곡의 음고(당시 베네치아에서 a'=440Hz를 사용했다는 내용)에 대한 적용은 신선함과 동시에 강한 설득력을 더해준다.

 


 

 

 

6. 플랜더스 리코더 콰르텟 (Flanders Recorder Quartet)  http://www.flanders-recorder-quartet.be

 

플랜더스 리코더 콰르텟(이하 FRQ)은 탄탄한 조직력과 정교한 앙상블로 암스테르담 루키 스타더스트 콰르텟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리코더 앙상블로 평가받는 벨기에의 리코더 사중주단이다. 1987년 창단한 FRQ는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전성기를 누렸던 콘소트 음악(Consort Music) 뿐만 아니라 바로크시대와 고전, 낭만,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와 장르의 음악들을 리코더 앙상블로 재해석해서 큰 호평을 받고 있는 단체다. 현재 멤버는 톰 비츠, 폴 판 루이, 바트 스판호프, 요리스 판 괴템(사진 좌측부터)으로 구성되어 있고, 연주하는 곡에 따라 게스트 멤버들과 함께 연주하기도 한다. FRQ가 시도하는 음악은 상당히 폭넓지만,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역시나 르네상스와 바로크시대 음악이다. 지금은 상당 부분 절판된 이들의 초기 레코딩(OPUS 111 레이블 음반들)을 살펴보면 이들이 얼마나 리코더 본연의 앙상블 음악에 몰두했었는지 알 수 있다. 최근에도 이런 본질적인 시도는 계속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2010년 발표한 14~16세기의 크리스마스 음악들을 모은 ‘노엘, 노엘’ 음반에서 여성 성악 앙상블 엔칸타르와 함께 작업한 음악도 눈여겨 볼만 하다. 그 외에 20세기 이후의 오늘날의 음악들에도 이들은 관심을 갖고 시도하고 있다. 이는 리코더를 과거의 악기로만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악기로 자리매김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글/ 박광준 (www.recordermusic.net)
[flute & ] 2012-04/05월호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