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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스 브뤼헨 (Frans Brüggen)

브뤼헨 (황금빛모서리) 2010. 11. 9. 15:14

프란스 브뤼헨

프란스 브뤼헨 (Frans Brüggen, 1934~    ) 


오늘날 리코더 연주가 중에서 프란스 브뤼헨의 영향력 밖에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거의 대부분의 연주가들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표본과도 같은 존재가 바로 프란스 브뤼헨이 아닐까 싶다. 리코더 뿐만 아니라 기타 다른 악기를 포함해서 고음악 부흥운동과 더불어 데이빗 먼로우 이후의 그 선봉에 있었던 이가 바로 프란스 브뤼헨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지휘자로 전향했기에 그의 리코더 연주는 레코딩으로만 만날 수 있는 상황인데, 그 마저도 절판되어 수 많은 애호가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텔덱에서 발매되었던 12장으로 구성된 그의 에디션은 이젠 구하기도 어려울 뿐더러 구할 수 있어도 고가의 금액을 지불하고서야 가능한 상황이다. 여기서는 리코더 연주자로서의 프란스 브뤼헨에 대해 언급해보고자 한다.

1934년 암스테르담 태생인 프란스 브뤼헨은 암스테르담 콘서바토리(Amsterdam Muzieklyceum)에서 리코더(케이스 오텐 사사, Kees Otten)와, 트라베르소를 배웠고, 암스테르담 대학교(University of Amsterdam)에서 음악학을 공부했다. 1955년 21살이 되던 해에 그는 헤이그 왕립음악원(Royal Conservatory of The Hague)의 교수로 임명받았다. 하버드, 캘리포니아, 버클리 음대 등에서는 초빙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이렇게 그는 젊은 나이에 이루기 어려운 위치에 일찌감치 도달했고, 당시 백지상태와도 같은 리코더 연주에 있어서 순차적으로 그림을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앞서 언급한 텔덱(Teldec)에서의 12장의 리코더 에디션에는 바로크시대의 주요 리코더 작품들을 작곡가별, 국가별, 형식별로 짜임새 있게 구성해서 담았다. 그 녹음들은 이미 폐반되었기는 했지만, 여전히 지금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 오늘날 활약하는 리코더 연주가들에게 기본적인 틀을 제시한 교과서와도 같은 자료들이다. 스웨덴의 단 라우린은 그의 비발디 협주곡(Bis) 녹음을 가지면서 프란스 브뤼헨의 비발디 레코딩을 들으면서 자극받았던 기억들을 언급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연주가들과 비교하면 세련미나 장식적인 부분에서의 기교적인 측면은 조금 부족할지 모르지만, 그의 연주에는 강한 확신과 더불어 비르투오즘이 깊게 배어 있다. 특히 그의 에디션 2집 이탈리아 작품에 실린 코렐리의 '라 폴리아'를 들어보면 이런 그의 성향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며, 동시에 오늘날의 날고 기는 연주가들의 녹음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브뤼헨이 활동하던 당시의 네덜란드는 고음악의 근원지와도 같은 곳이었다. 그곳으로부터 지금의 고음악이 확산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런 덕분에 그의 레코딩에는 당대는 물론 지금에도 대가로 불리는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안너 빌스마 등과의 연주를 쉽사리 만나볼 수 있다. 텔덱과 지금의 소니 클래식에서 발매되는 세온(Seon)에는 이런 진귀한 기록물들이 가득하다. 레온하르트와 빌스마와의 환상적인 앙상블은 지금 들어도 신선함이 바래지 않았을 정도로 바로크의 생동감이 넘쳐 흐른다. 이들 또한 절판되었다가 최근 다시금 하나 둘씩 새옷을 갈아입고 재발매되곤 하지만, 화려한 자켓의 신보들에 비해 염가판으로 왜소해 보이는 옷차림이 아쉬울 따름이다.

사워크림(Sour Cream)

리코더 연주자로서의 브뤼헨은 독주자로서의 모습만 유독 많이 비춰지곤 하는데, 그의 앙상블 이력 또한 독주자의 모습 못지 않게 다채롭다. 1972년 그는 제자이자 후배이자 동료인 발터 판 하우베(Walter van Hauwe, 사진 좌측)와 케이스 부커(Kees Boeke)와 함께 사워크림(Sour Cream)이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리코더 앙상블을 결성했다. 이들은 1600년대를 중심으로 그 이전 시대의 음악들을 발굴하고, 해석해내는 중대한 역할들을 감당했다. 덕분에 청중들은 바로크 이전에 리코더 앙상블이 상당히 유행했었고, 당시 비올과 더불어 콘소트 음악에서 중대한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글로사(Glossa)에서 발매된 '사유의 열정(Passion of the reason)'은 앙상블 사워크림의 자화상과도 같은 음반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을 시작으로 이후 리코더 앙상블은 활기를 띄게 되었다. 프란스 브뤼헨의 조카인 다니엘 브뤼헨(Daniel Brüggen)과 그의 동기들이 결성한 암스테르담 루키 스타더스트 쿼텟(Amsterdam Loeki Stardust Quartet)의 탄생 배경에도 이들의 영향력이 컸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물론, 다니엘 브뤼헨은 그의 스승으로 케이스 부커를 언급하지만, 그의 삼촌의 영향력 또한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컸을 것이다. ALSQ의 30주년 기념음반 Loeki Files(Channel Classics)에 수록된 DVD에 사워크림과 ALSQ가 합동으로 연주하는 동영상을 보면 풋풋했던 젊은 연주자들 주변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버팀목과도 같은 세 명의 선배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의 협력은 당시 큰 편성의 콘소트 음악을 재연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프란스 브뤼헨의 레코딩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가 쓰는 악기에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리라 본다. 그의 레코딩에는 대부분 친절하게도 그가 사용한 리코더가 소개되어 있는데, 거의 대부분이 전설적인 제작가였던 프레드릭 모건(Frederick G. Morgan)의 작품들이다. 호주 출신의 이 제작가는 바로크와 그 이전 시대의 리코더들을 훌륭하게 복원해냈고, 이 리코더들은 브뤼헨의 레코딩에서 그 실력을 과시했다. 모건은 안타깝게도 1999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브뤼헨이 사용한 모건의 작품들은 후에 브뤼헨 콜렉션으로 불렸다. 일본의 제논(Zen-on)에서는 이 모건의 히스토리컬 모델들을 다룬 드로잉을 소개되기도 했고, 최근 독일의 몰렌아우어(Mollenhauer)에서는 모건을 기념하는 서적을 발행하면서 모건과 더불어 연주자들에 얽힌 이야기들을 함께 엮기도 했다. 이 모델들은 오늘날 메크(Moeck)와 몰렌아우어에서 제작하는 리코더들의 모델들로 자리를 잡은 상태다. 

브뤼헨은 현재 1981년 창단한 18세기 오케스트라(Orchestra of the 18th Century)를 이끌면서 바로크시대 뿐만 아니라 모차르트, 하이든, 슈베르트 등의 작품들도 다루고 있다. 그는 2003년 4월에는 기사작위(Knight of the Order of the Nethelands Lion)를, 2010년 9월에는 'The Honorary medal for Arts and Science of the Order of the House of Orange' 를 수상하기도 했다. 그의 오케스트라 녹음들은 현재 글로사 레이블을 통해 진행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