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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일상

피리 & 미칼라 페트리

브뤼헨 (황금빛모서리) 2010. 10. 13. 11:57


아직도 어떤 이에게는 리코더는 종종 '피리'라고 불리기도 한다. 리코더를 한다는, 적어도 매니아라는 이들은 그런 반응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해 한다. 나 또한 그래왔다. 피리는 우리나라 전통 국악기 이름이라고 재설명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굳이 파해쳐보자면, 피리라는 말이 과연 전적으로 틀린 말일까? 우리나라에서 리코더를 피리라고 부르는 것은 아마도 초창기에 리코더가 초등교육에 도입되면서 '피리'라는 명칭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렸을 적 서점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피리교본', 혹은 '새 피리교본'이었다. 당시에는 우리가 리코더라고 당연시하게 불렀던 것이 피리였던 것이다. 때문에 당시에 초등교육을 받았던, 그리고 그 영향권 아래 있던 사람들에겐 오히려 '리코더'라는 명칭이 입에는 다소 거북할 수도 있는 것이다. 리코더인(人)들에게는 피리라는 어감이 리코더를 폄하하는 단어처럼 들리기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은 알지만, 다른 한 측면도 이해하려는 마음은 조금은 필요할 것 같다.

이 쯤에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 보겠다. '플루트(Flute)'를 우리말로 바꾸면 바로 '피리'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오늘날 흔히 말하는 플루트는 '가로피리', 리코더는 '세로피리'에 속한다. 물론, 바로크 시대에는 일반적으로 플루트가 리코더를 지칭했지만. 아무튼, '피리'는 우리나라의 국악기 명칭이기도 하지만, 부는 목관악기를 지칭하는 명칭이기도 하다. 때문에 리코더를 피리라고 부르는 것이 오늘날에는 통상적인 것이 아니긴 하지만, 굳이 꼬집자면 틀린 말도 아니라는 것이다. 거기에 대해서 리코더를 피리, 피리 하는 사람들을 조금 비약해서 '미개인' 취급하는 것은 과연 옳은 태도일까? 클래식이라는 범주 안에서 마이너 악기인 리코더에 대한 일종의 컴플렉스에 대한 반감의 표출은 아닐까?

리코더 연주가 미칼라 페트리가 올 해 또다시 내한한다. 지난번처럼 기타리스트인 라스 한니발과 함께. 고등학교 시절 리코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동네 레코드점에서 처음 구입했던 리코더 음반이 바로 미칼라 페트리 테잎이었다. 텔레만과 헤벨르의 협주곡이 담긴, 바이올리니스트 핀커스 주커만과 함께 연주한 음반이었는데, 당시 내게는 무척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렇게 빠른 패시지를 이렇게 분명하게 연주하다니!! 페트리의 속도감과 청명한 음색은 당시 내 귀를 잡아 흔들었다. 당시에는 수 많은 수입음반 속에서 리코더를 발견하기도 내게는 어려웠고, 정보 또한 많지 않았는데, 그래도 손쉽게 만날 수 있는 연주자가 바로 미칼라 페트리였다!! 그녀의 음반은 라이센스로 몇장 발매되기도 해서 대중에게 그나마 리코더 연주자로서는 친숙한 인물이었다. 당시 페트리를 홍보하는 음반사의 홍보문구를 기억한다. '리코더의 여왕, 미칼라 페트리'

요즈음에는 십 여년 전 과는 달리 페트리 이외에도 수 많은 연주가들이 국내 애호가들에게 알려져 있다. 이미 독주가며, 앙상블이며 수 많은 전문 연주가들이 한국을 방문해서 연주회도 가졌고, 그들의 음반들도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어렵지않게 구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또한, 국내에도 바로크음악, 고음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애호가들은 시대악기 연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때문에 제법 리코더 음악을 들었다는 사람들은 '정격성'에 가치를 두면서 그에 맞는 연주자와 연주를 찾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에겐 페트리외에도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점점 사람들의 인식속에선 '페트리≠정격성' 이라는 공식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나 또한 바로크시대의 레퍼토리를 선택할 때, 페트리는 일차적으로 제외되었다. 그녀의 깔끔한 톤은 왠지 거부감이 들었고, 차갑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미하엘 슈나이더, 단 라우린, 모리스 스테거, 도로테 오베를링어 등등의 신보들을 구입하기도 바빴다.

하지만, 대중의 관심이야 어떻든 덴마크의 탁월한 연주가 미칼라 페트리는 자신의 길을 꿋꿋하게 가고 있었다. 사실, 그 대중이라는 말도 국내로 한정해야 맞지 않을까 싶다. 그녀의 미발굴된 레퍼토리에 대한, 그리고 끊임없는 실험성이 담긴 도전정신은 다른 연주가들이 이뤄내지 못한 결과물을 내놓고 있다. 최초로 비발디 사계 전곡을 리코더로 연주한 이가 바로 페트리였다. 또한, 일반 연주가들이 손대지 않는 바로크 이후의 레퍼토리에도 손을 내민 것도, 남편과의 듀오로 수 많은 고전, 낭만의 선율을 리코더로 표현한 것도 그녀였다. 조국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으로 북유럽의 민속 선율을 담아내기도 했고, 오늘날엔 중국의 전통악기 연주가와 호흡을 맞추는 실험성도 선보였다. 솔직히 페트리가 '또' 온다라는 소식에 이제 뭐 있겠는가! 싶었다. 하지만, 오랜만에 페트리의 홈페이지를 방문하면서 내가 이 연주가에 대해 너무도 편협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연주가의 오랜 역사를 보면서 연주가로서의 신념도 엿보았고, 아직도 발전하고 있는 음악가를 만날 수 있었다.

언제부턴가 우리의 관념속에선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자리잡은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주류'가 이렇다면, 그 외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들...리코더든, 피리든 그리고, 시대악기 연주건 아니건 그런 것에 치중하고, 따지고 가려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관건이 아닌가 싶다.    


2009. 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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