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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일상

악기에 대한 평가

브뤼헨 (황금빛모서리) 2010. 10. 13. 11:53


벌써 바로크에서 일하게 된지도 만으로 6년이 다 되어간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시간 동안 참 많은 일들을 접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오늘 문득 든 생각은 '악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사고'에 관한 부분이다. 난 개인적으로는 악기를 사러 온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 그 사람에게 '적합한' 악기를 권해주려고 노력해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간혹...아니 때때로 많은 사람들이 악기의 품질을 논할 때 '가격'이라는 부분에 상당히 연연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예를 하나 들자면, Moeck의 Rottenburgh 모델에는 단풍나무, 배나무, 회양목, 자단, 흑단 등등 다양한 재질의 나무가 사용되는데, 각각의 나무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또한, 나무에 따라 가공하기 쉬운 것이 있는가 하면 상당히 애를 먹이는 것도 있다. 때문에 같은 모델일지라도 재질에 따라 가격 또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흑단의 경우 단풍나무의 두 배에 달하는 가격을 갖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 가격에 따라 단풍나무보다 흑단이 더 좋은 리코더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단풍은 단풍대로, 흑단은 흑단 대로의 특징을 갖고 있다. 아무래도  흑단이 단풍보다 강도나 중량면에서 더 높은 수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정확하게 같은 구조를 갖고 있다면, 더 강한 소리를 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강한 소리의 악기가 더 좋은 악기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 이런 부분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수제품'에 대해 약간의 환상을 갖고 있다. 공장에서 찍어 만든 악기가 아닌 수제품에는 장인의 숨결이 들어가 있다는 '환상', 그 환상은 악기를 선택할 때 한 몫 단단히 한다. 일단 점수를 따고 들어가는 것이다. 고객의 요청에 따라 여러 악기를 일단 꺼내서 나열한다. 악기에 대해서 질문을 하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설명을 한다. 그러다가 수제품이라고 얘기하면 눈을 번뜩이는 사람이 있다. 그 이후부터 그 사람은 수제품이라는 색안경을 벗지 못한다. 조금 과장하면 사랑하는 연인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람처럼 말이다. 설득을 한다. "제 생각에는..."라고 말을 꺼내면서 "이 악기가 이런 부분에서 더 적합하지 않을까요."라고 말을 건넨다. 하지만, 그 사람에겐 이 악기가 아닌 저 악기에게 이미 마음을 빼앗긴지 오래다. 왜냐면 저 악기는 수제품인걸...

물론, 수제품의 경우 좋은 악기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여기서 좋다는 것은 공장에서 찍어 만드는 악기에서는 나오기 어려운 사운드가 수제품에서는 구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리코더 애호가라면 그런 음색을 체험했을 때, 그 악기에게 중독된 듯한 느낌마저 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차이는 메이커가 직접 라비움과 윈드웨이, 블럭, 운지홀 등을 본인이 추구하는 기준에 따라 세밀하게 작업하고, 그 결과물 또한 훌륭했을 때 비로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의 놀라운 음향이 그 악기에서 재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종종 '이건 아니올시다' 하는 악기들이 많은 것도 수제품이다. 공장제품들에 비해 악기간의 편차가 큰 것이 수제품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악기를 고를 때, 특히 수제품을 고를 때는 더 세심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냥 단순히 유명한 아무개의 제품이기 때문에 이 악기는 훌륭한 악기다! 라는 생각은 구시대적인 발상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세상엔 얼마나 많은 색안경이 존재할까? 적어도 기성세대들은 우리 아이들에게 '가격이 높은 사람'이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고 있진 않나? 가격은 단지 차이이고, 특성일 뿐인 것을...값싼 단풍나무에게선 값비싼 흑단에서는 들을 수 없는 고유의 음색이 있다. 오히려 값싼 공장제품의 이런 악기들이 엉터리 수제품들보다 월등하게 나은 경우도 많다. 예전에 난 누군가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200만원이 넘는 수제품 알토 리코더를 보면서 "난 이거 그냥 줘도 안 가질거야." 라고... 왜냐면 그 리코더는 이미 내겐 자리만 차지하는 나무 막대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009.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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