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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도로테 오버링어 첫 내한공연 [2023/09/13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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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도로테 오버링어 첫 내한공연 [2023/09/13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브뤼헨 (황금빛모서리) 2023. 9. 21. 11:14

 

공연을 감상한지 1주일이 지났다. 별도로 기록해 둔 것이 없다보니 기억에 의존해야 하기에 부족하거나 다소 왜곡된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도로테 오버링어라는 연주자의 내한공연을 기록해두고 싶은 마음에 몇 자 적어본다.

 

도로테 오버링어(Dorothee Oberlinger)는 타고난 솔리스트다. 과거 라움 클랑(Raum Klang), 아르카나(Arcana), 지금의 DHM 등에서 쏟아낸 음반들과 연주회들이 그것을 뒷받침해 준다. 그녀의 음반이 국내에 소개된 것도 20년이 조금 넘었으니 첫 내한 치고는 꽤나 늦은 감이 있다. 그래서일까. 리코더 애호가들의 이번 연주회에 대한 기대감은 엄청나게 높았다. 나 또한 객석에서 숨죽이며 쿵쾅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고 있었으니... 

 

누군가를 직접 대면하기 전까지는 그 사람의 겉모습만 보고 추측하기 나름이다. 도로테 오버링어의 음반들이 국내에 처음 소개될 무렵 모 평론가가 꺼내든 '얼음공주'라는 별명은 어느새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버렸다. 다소 차가워보이는 음반 자켓의 표정들과 비르투오즘으로 충만한 다이내믹한 연주들 때문에 강철 같은 이미지로 다가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연주회를 통해 관객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그것은 오해였다고.... 차가운 것이 아니라 유쾌한 것이라고 말이다. 개인적으론 오버링어를 모리스 슈테거(Maurice Steger)와 비슷한 성향의 연주자로 보기도 했는데, 음반이 아닌 실연으로 만난 이 두 사람은 완전 달랐다. 내가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첫 내한인 만큼 어떤 프로그램으로 꾸며질지 기대가 되었다. 전반부에는 바로크를 중심으로 이전, 이후시대들의 작품들이, 후반부에는 바흐와 코렐리의 작품이 연주되었다. 후반부 첫 곡은 본래 하세의 작품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연주자의 요청으로 바흐의 파르티타 BWV 1013으로 변경되었다. 개인적으론 무척 반가웠다. 실연으로 꼭 한번 들어보고 싶은 곡이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연주회 모든 순간들이 눈 앞에 그려지진 않는다. ㅎㅎ 단지 몇 순간만이 눈 앞에 떠오를 뿐... 베이스 리코더를 불면서 입장한 장면과 제자이자 이젠 동료인 리코더 연주자 허영진의 무대 뒤에서 새소리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 대목들... 그리고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연주들에 일등공신으로 기여한 윤현종의 타악기와 테오르보, 바로크기타의 순간들...

 

공연 프로그램 전반부와 후반부의 성격은 완전 달랐다. 곡 형식에도 차이가 있었지만, 그 보다는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가 달랐던 것 같다. 참석했던 대부분의 관객들이 동의할 것이라 예상하는데, 전반부의 임팩트는 엄청났다. 때문에 후반부 공연 또한 훌륭했음에도 전반부의 잔상들이 많이 남아있지 않았을까 싶다. 전반부 프로그램은 시대도 다르고, 성격도 다른 작품들을, '새(Bird)'라는 주제 하나로 묶어 버렸다. 직접 들은 바는 아니지만 거의 확신한다. 조금 과장하자면, '새'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본래 알고 있던 곡의 성격들 마저 개조해버렸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여태껏 코렐리의 소나타 Op. 5/10의 느린 악장을 들으면서 새 소리를 연상하지는 못했다. (100% 장담할 수는 없지만...) 그런데 이번에 들은 코렐리는 분명 새 소리였다. 본래 바이올린 곡이라는 것을 잊어버릴 정도로 요리해 버렸다. 그리고 오테테르와 잔하우젠을 묶어 연주하다니... 300년이나  차이나는 곡들이 하나의 주제로 연결되었다. 

 

후반부의 시작은 바흐의 파르티타 BWV 1013. 마지막 악장의 갑작스런 급제동을 제외하고는 상당히 진지하게 접근한, 그래서 전반부의 흥분을 많이 가라앉혀 준 연주였다. 1악장 종지부를 자연스런 장식음을 곁들여 마무리한 대목은 아련했다. 종종 이 부분을 리코더 연주자들은 3옥타브 C로 많이 끝내곤 하는데, 오버링어는 2옥타브 C로 마무리했다. 16일 진행된 특강에서 왜 낮춰서 끝냈는지 물었을 때, 오버링어는 3옥타브 C 소리는 아름답지 않고, 해당 부분은 예수님의 승천을 연상시키는 대목이기 때문에 그렇게 연주했다고 답했다. 올가 왓츠가 연주한 바흐의 샤콘느는 하프시코디스트 라르스 울리크 모르텐센이 편곡한 버전을 사용했다. 올가 왓츠는 과거 리코더 연주자 스테판 테밍의 데뷔 음반에서 처음 만났는데, 당시의 이미지 때문에 다소 파격적인 연주를 들려줄거라 예상했지만, 그와는 달리 학구적인 자세로 차곡차곡 건축물을 쌓아 올리듯 곡을 완성시켰다. 마지막은 코렐리의 라 폴리아! 대망의 라 폴리아! 만약 여기서 첼로까지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리코더와 하프시코드, 바로크 기타로도 충분했다. 지금까지 알고있던 오버링어의 이미지를 재확인시켜주는 대목이지 않았을까. 착각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본래 많이 들어왔던 코렐리 폴리아의 전체 변주 중 몇 개가 빠진 것 같기도 했다. 무척 즐거웠던 연주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기 때문일 수도...

 

오버링어는 이틀후 춘천고음악제 오프닝 공연으로 비발디를 포함한 다양한 바로크시대 콘체르토를 연주했다. 시간적 여건만 되었다면 꼭 가보고 싶었던... 워낙 음반들을 통해 콘체르토에서 멋짐을 들려주었던 그였기에 못 가는 것이 무척 아쉬웠다. 게다가 비발디 RV 441, 443이 포함된 공연이었으니... 언젠가 다시 한국을 찾는다면 수족과 같은 앙상블 1700과 함께 내한하기를 기대해본다.